길음뉴타운 32년(1994~2026): 9개 구역 집 수는 그대로인데 원주민 정착률은 17%, 2009년 구술과 성북구청 기록 대조

계산기를 두 번 두드렸다. 길음뉴타운 9개 구역에서 철거 전에 살던 가구를 더하면 1만 2,844가구였다. 같은 구역에 새로 지은 아파트 세대 수를 더하면 1만 2,838세대다. 차이는 여섯 집이다. 동네 하나를 통째로 허물고 다시 지었는데 집의 개수는 거의 그대로 남았다.

그런데 2009년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에서 주민들이 꼽은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집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왜 바뀌었을까. 이 글은 서울역사박물관 보고서 『길음동』(2010)의 길음뉴타운 장(110~117쪽)과 성북구청 주거정비과가 공개한 구역별 추진 기록을 한 줄씩 맞춰 보며 이 질문을 따라간다. 보고서는 2009년 8월에 멈춰 있고, 구청 기록은 2026년까지 이어진다. 두 자료를 겹치면 2009년의 구술이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가 보인다.

1994년에 시작해 2026년에 아직 끝나지 않은 공사

흔히 길음뉴타운은 2002년에 시작했다고 말한다. 성북구청 기록에도 2002년 10월 23일 "길음뉴타운 개발계획 발표"가 적혀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길음 지역이 그보다 앞선 1994년에 이미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그래서 다른 뉴타운처럼 한꺼번에 밀어낸 것이 아니라 "구역별로 점진적인 개발"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111쪽). 구청 기록으로 각 구역의 구역지정일과 준공일을 뽑아 걸린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구역구역지정(또는 촉진계획 결정)준공(사용승인)걸린 시간공급 세대
1구역1994.04.192003.12.309.7년구청 기록에 없음
3구역1995.06.222003.03.31 완료고시7.8년1,677
2구역1995.08.162005.04.209.7년2,350
4구역1997.10.292005.04.207.5년1,881
5구역1997.10.292006.06.238.6년808 (임대 148)
6구역2001.11.052006.11.105.0년977
8구역2005.05.122010.06.305.1년1,617 (임대 120)
7구역2005.05.122010.07.285.2년548
정릉길음9구역2005.05.122010.09.305.4년1,254 (임대 242)
길음3재정비촉진2009.03.192019.05.0710.1년399 (임대 40)
길음2재정비촉진2009.01.022019.09.1810.7년2,352 (임대 633)
길음1재정비촉진2009.01.022022.01.2713.1년2,029 (임대 351)
길음역세권2008.07.312025.12.2917.4년276 (임대 83)
길음4재정비촉진2009.03.192015.07.30 구역해제중단계획 199
길음5재정비촉진2010.04.08미착공 (2019 조합설립)16년째구청 기재 808 (5구역 수치와 같아 확인 못 함)
길음시장정비사업2006.10.19미착공 (2025.07.31 사업시행계획인가)20년째계획 353

표: 성북구청 「길음재정비촉진 구역별 현황」(최종수정 2026.08.28)에서 직접 뽑아 정리. 걸린 시간은 운영자가 날짜 차이를 계산한 값이다. 2·3재정비촉진구역은 촉진계획 결정고시일을 시작점으로 잡았다.

표를 시간순으로 놓으면 세 묶음이 보인다. 1990년대에 지정된 1~5구역은 7~10년이 걸렸다. 2005년 5월 12일 같은 날 지정된 7·8·9구역은 모두 5년 남짓 만에, 2010년 여름과 가을에 줄지어 준공했다. 2006년 확장 이후 편입된 구역은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빨라야 10년, 길음역세권은 17년이 넘게 걸렸고, 4재정비촉진구역은 2015년에 구역 자체가 해제됐다. 1994년 첫 구역지정부터 2026년 7월 2일 길음역세권 이전고시까지 32년이 흘렀는데도 시장 구역과 5재정비촉진구역은 아직 착공 전이다.

왜 뒤로 갈수록 느려졌을까. 보고서는 2009년 시점에 이미 원인을 짚었다. 조합 결성과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주민 사이에 갈등이 생겼고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져 길음1·2재정비촉진지구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고 썼다(115쪽). 구청 기록을 보면 이 진단은 그대로 맞았다. 2재정비촉진구역은 2009년 6월에 조합을 세웠지만, 1재정비촉진구역은 2010년 4월에야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준공도 2년 4개월 늦었다. 운영자의 해석을 하나 더하자면, 5년 만에 끝난 7·8·9구역은 2007년 7~9월에 착공했다. 착공 시점이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이었다는 점이 속도 차이를 설명하는 한 갈래로 보인다. 이 부분은 보고서와 구청 자료가 직접 말하지 않으므로 추정으로만 적어 둔다.

집은 그대로, 사람은 바뀌었다

보고서 113쪽 표에는 구역별 "개발 전 인구/가구 수"가 있다. 여기에 구청이 공개한 공급 세대 수를 나란히 놓았다. 양쪽 숫자가 모두 있는 9개 구역만 골랐다.

구역개발 전 가구 (보고서, 2009.8 기준 표)공급 세대 (구청)증감
2구역2,4372,350-3.6%
4구역1,5651,881+20.2%
5구역540808+49.6%
6구역1,155977-15.4%
7구역543548+0.9%
8구역1,9151,617-15.6%
길음1재정비촉진2,0682,029-1.9%
길음2재정비촉진2,4212,352-2.9%
길음역세권200276+38.0%
합계12,84412,838-0.05%

구역마다 늘고 줄었지만 합치면 6세대 차이다. 6구역과 8구역은 오히려 집이 15% 넘게 줄었다. "재개발을 하면 집이 늘어 주민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는 적어도 이 9개 구역의 숫자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 개발 전 숫자는 세입자를 포함한 가구이고, 공급 세대에는 임대주택 1,335세대(5·8구역, 1·2재정비촉진, 역세권 합계)가 들어 있다. 분양 물량만 놓고 보면 집주인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철거 전 가구 수보다 적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누가 들어갔나. 보고서는 경향신문 2009년 1월 20일 기사를 인용해 길음뉴타운 조성지역에 다시 입주한 원주민이 "약 17.1%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적었다(115쪽). 같은 시기에 주민들이 직접 말한 숫자도 있다.

말한 사람 (보고서 기재)말한 숫자쪽
정재웅 (남, 1933년생, 2009.3.4)"30%가 채 못 살아", "20% 밖에 못 들어와"114
김양우 (남, 1936년생, 2009.6.11)친목회원 "열 명 중에 세 명? 네 명?"115
한한수 (남, 1940년생, 2009.4.2)"10프로, 15프로 밖에 못 들어간대"116
경향신문 2009.1.20 (보고서 인용)17.1%115

주민들의 어림셈이 10~40% 사이에서 17.1%를 감싸고 있다. 김양우 씨의 숫자가 가장 높은 것은 그가 친목회 회원을 기준으로 말했기 때문일 수 있다. 연락이 이어지는 사람은 동네에 남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모임 안에서 세면 정착률이 실제보다 높게 보이기 쉽다. 17.1%를 9개 구역 1만 2,838세대에 그대로 대어 보면 원래 주민은 약 2,200세대, 나머지 1만 600세대 남짓은 새로 온 사람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비율은 조성지역 전체에 대한 수치라 구역별로는 다를 수 있으니 어림값으로만 읽어야 한다.

바뀐 것은 숫자만이 아니었다. 최병열 씨는 단독주택에 살 때의 다정한 이웃과 아파트를 견주며 "옆에 사람 위에사람 밑에 사람 안봐요"라고 했다(114쪽). 이웃에 대한 말인데 건물의 구조를 설명하는 말처럼 들린다. 골목에 문을 맞대고 살던 시절에는 어깨너머로 보이던 이웃이 복도와 층으로 나뉜 것이다. 이 일대가 공동묘지를 옮긴 자리에 집터로 바뀐 과정은 미아리 공동묘지 30년 글에 정리해 두었다.

2009년의 돈을 2025년 물가로 다시 읽기

원주민이 돌아오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보고서는 돈을 꼽는다. 집을 가진 사람도 보상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보다 아파트 분양가가 비싸서 추가로 1억~2억 원을 내야 했고, 세입자는 1인 가구 기준 약 7백만 원의 주거대책비를 받고 떠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116쪽). 김양우 씨의 말은 더 짧다. "33평 들어가려면 이억 정도 내라니까 없잖아."(115쪽)

2009년 돈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의 소비자물가지수를 썼다. 2020년을 100으로 볼 때 2009년 연평균은 83.906, 2025년은 116.61이다. 배율은 약 1.39배다. 계산 방식은 1975년 수도 공사비 환산 글과 같다.

2009년 기록금액2025년 물가 기준
입주 추가 부담 (보고서 116쪽)1억~2억 원약 1억 3,900만~2억 7,800만 원
33평 입주 부담 (김양우, 115쪽)"이억 정도"약 2억 7,800만 원
30평대 조합원 분양가 (정용식, 117쪽)"삼억 팔천" 정도약 5억 2,800만 원
1인 세입자 주거대책비 (보고서 116쪽)약 700만 원약 973만 원

물가지수는 생활물가 전반의 변화라서 집값 변동을 뜻하지 않는다. 그래도 표가 보여 주는 대비는 분명하다. 세입자가 받은 주거대책비는 오늘 돈으로도 1천만 원이 안 된다. 같은 동네에 남으려면 그 수십 배가 필요했다. 보고서의 설명대로라면 세입자가 많은 구역일수록 정착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뉴타운 이전 수십 년 동안 이 동네의 생업과 생활 인프라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주민 12인의 구술로 만든 길음동 연표에 모아 두었다.

모두가 손해를 봤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정용식 씨는 땅값이 평당 "이백오십만원씩 삼백만원씩 하던 게" 개발 뒤 "천만원 뭐 이상씩" 한다며 일찍 팔고 나간 사람도 다른 곳에 땅을 사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117쪽). 명목 가격으로 3.3~4배다. 다만 이 시세는 그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고, 공시지가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정재웅 씨는 원주민이 20%밖에 못 들어온다고 말한 바로 그 사람인데, 동시에 하수도가 모자라 골목을 다니기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 동네가 재개발 하는 게 나는 필요하다고 봐"라고 했다(117쪽). 한 사람 안에 두 판단이 함께 있었다는 점이 2009년 길음동의 실제 분위기에 가깝다고 본다.

두 기록을 겹쳐 보다 어긋난 곳

보고서와 구청 기록을 대조하면서 서로 다른 숫자 몇 개를 발견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하지 못한 것은 둘 다 적는다.

  • 확장 고시 연도. 보고서 113쪽은 "2004년 확장 고시"라고 썼지만 같은 보고서 111쪽과 구청 기록은 확장고시를 2006년 6월 29일(서울특별시고시 제2006-225호)로 적는다. 2004년은 길음역세권(6월 3일)과 1재정비촉진구역(6월 7일)의 추진위원회 승인 연도다. 113쪽의 2004년은 이 승인 시점과 섞인 것으로 보인다.
  • 조합 해산 시점. 보고서 111쪽은 2009년 당시 1~6구역의 "조합이 해체"되었다고 썼다. 구청 기록에는 1구역 조합해산등기가 2022년 12월 7일, 2구역이 2022년 2월 15일로 남아 있다. 보고서의 "해체"는 사업이 사실상 끝났다는 뜻으로 쓴 말이고, 법적인 해산은 13년 뒤에 이루어진 것으로 읽힌다.
  • 7구역 위치. 보고서 표는 "길음2동 625-17번지", 구청은 "길음1동 625-17번지"다. 보고서 표 머리에 "2007년 동명 통폐합 이전 주소"라고 되어 있어 행정동 이름이 바뀐 영향일 수 있다.
  • 개발 후 가구와 공급 세대. 보고서의 "개발 후 가구 수"는 6구역 1,154가구, 5구역 665가구인데 구청의 공급 세대는 각각 977세대와 808세대다. 보고서 숫자가 실제 거주 가구를 센 것인지 기준을 확인하지 못해, 위 표에서는 구청의 공급 세대를 썼다.
  • 면적. 8구역 103,036.5㎡(보고서)와 103,104.5㎡(구청), 길음역세권 13,310㎡와 13,449㎡처럼 2009년 이후 구역의 면적이 조금씩 다르다. 계획 변경 때문으로 보이지만 고시문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 5재정비촉진구역 규모. 구청 기록의 건축규모 "지하6층/지상30층 7개동 808세대(임대 148세대 포함)"는 이미 준공한 5구역의 숫자와 글자 하나까지 같다. 옮겨 적는 과정의 오류일 가능성이 있어 이 구역의 계획 세대 수는 쓰지 않았다.
  • 구술자 출생연도. 같은 날(2009.6.25) 면담한 최병열 씨가 114쪽에는 1944년생, 115쪽에는 1945년생으로 적혀 있다.

아직 시작하지 못한 구역, 길음시장

표의 맨 아래 줄에는 길음시장정비사업구역이 있다. 2006년 재정비촉진계획에 들어간 뒤 2020년에야 조합을 세웠고, 2025년 7월 31일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아 지하 5층·지상 28층 353세대 계획이 잡혀 있다. 관리처분인가와 철거, 착공은 아직 앞에 남아 있다. 정릉천을 따라 사람이 모이며 생긴 시장의 내력은 길음동 시장 이야기에서 다뤘다. 이문규 씨는 2009년에 역세권에 "삼십 몇 층인가 두 채가 들어온다"며 "길음동이 천지개벽이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113쪽). 구청 기록상 길음역세권은 지상 35층 2개동이고, 준공은 16년 뒤인 2025년 12월 29일이다. 32년 동안 지은 아파트의 세대 수를 다 세어 보니 결국 남는 질문은 집이 몇 채냐가 아니었다. 그 집에 원래 살던 사람이 몇 명 남았느냐였다. 다음 생활사 글에서는 이 동네에서 떠난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고서 구술에 나오는 수유리·정릉·상계동 같은 지명을 단서로 따라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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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서울역사박물관, 『길음동』(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2010, 110~117쪽 「길음뉴타운 사업」(구술 인용 출처: 정재웅, 김양우, 한한수, 최병열, 정용식, 이문규 씨의 2009년 면담 기록. 115쪽 정착률 17.1%는 보고서가 인용한 경향신문 2009년 1월 20일 기사). https://museum.seoul.go.kr/CHM_HOME/ebook/ecatalog.jsp?Dir=409&catimage=
  2.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길음 소개. https://museum.seoul.go.kr/archive/archiveNew/NR_archiveList.do?ctgryId=CTGRY404&type=A
  3. 성북구청 주거정비과, 「길음재정비촉진 구역별 현황」(추진경위·구역별 추진사항, 최종수정 2026.08.28). https://www.sb.go.kr/www/contents.do?key=6378
  4.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소비자물가지수 총지수(2020=100) 연간: 2009년 83.906, 2025년 116.61. https://ecos.bok.or.kr/

보고서와 아카이브의 사진·지도는 재사용 허락 여부를 확인하지 못해 싣지 않았다. 보고서 112쪽 구역배치도와 114쪽 개발 전 항공사진·조감도는 위 e-book 링크에서 볼 수 있다. 표는 모두 운영자가 출처 숫자로 직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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